더블서티 TOP 10 - 게임 속의 낚시꾼 9위 by 사카키코지로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장대하리라.

누가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상당히 감동적인 얘기입니다. 미약하게 시작해서 큰 일을 이뤄냈다는 뜻이니까요. 저도 지금 당장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마이너 게이머에 불과합니다만, 언젠가는 무언가로 큰 성공을 거두어 나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위의 단어가 인간 낚시에 적용된다면?

네, 이런걸 두고 전문용어(?)로 '갖다 붙이기'라 합니다. 처음에는 극소수의 대상을 노리고 던져진 떡밥이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떡밥이 부풀러 오르더니 엄청난 대어를 낚게 되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그랬죠. 시작은 당시 70년대 슈퍼로봇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시청률도 얻고, 장난감도 팔아먹자는 대찬 기획으로 만들어진 만화였습니다만,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일본애니를 모르는 사람 조차 건담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엄청난 대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게임 속의 낚시꾼 9위도 그와 마찬가지로 작게 시작하여 대박을 터뜨린 떡밥 인물입니다.



알버트 웨스커
from 바이오해자드


바이오해저드는 90년대 중반의 캡콤에게 있어서 큰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작품입니다. 이 게임의 성공으로 인해 캡콤은 3D 액션 게임의 선두주자로......가만, 이건 지난번 옛날 게임 이야기 때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 얘기 아닙니까. 그런고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옛날 게임 이야기편을 못 보신 분은 위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아무튼,

간지나게 머리를 쓰윽 쓰다듬으며 멋을 부리며 첫 등장을 하는 알버트 웨스커는 라쿤시경 S.T.A.R.S(특수 전략 및 구조 부대)의 A팀 리더입니다. 선글라스가 어울리는 쿨한 외모에,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포커 페이스, 리더십을 발휘하는 냉철한 모습은 그야말로 리더 그 자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친구, 게임 시작부터 허둥대면서 켈베로스를 쏘더니, 꼴사납게 저택에 도망쳐 들어와서 하는 첫 한마디가,



네, 이쯤되면 오프닝에서 보여주던 그 멋은 이미 다 달아나고 간 뒤입니다. '도대체 이 녀석 리더 맞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게다가 아니나 다름아닐까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립니다. 아니 아까 분명 '여기는 내가 확보해두지.'라고 말하지 않았나? 특수부대의 리더 정도 되는 사람이면 자기가 한 말 정도는 '사수(死守)'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이미지를 망친채 도망쳐버린 리더 욕하기는 잠깐 접어두고요, 게임 중간중간에 웨스커를 연상시키는 얘기가 중간중간에 나옵니다. 위의 편지만 해도 '그 선글라스 녀석 때문에 너한테 전화도 할 수 없어'라고 나오는데요,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글라스를 낀 정체모를 녀석'이라고 하면 MIB같은, 비밀요원같은 녀석들을 떠올리겠습니다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으로선 당연히 웨스커를 먼저 생각해낼 겁니다.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녀석이니까요.

아무튼, 이미지 회복을 노리기 위해서인지 녀석은 뻔뻔하게도 다시 나타납니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과 함께 말이죠. 그리고는 리더랍시고는 이래라저래라 참견입니다. 쳇, 너 지금 의심 받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아라~

그 와중에 S.T.A.R.S를 이 저택으로 유인해내서 실전 데이터를 얻으라는 내용의 문서를 발견합니다. 음? 그렇다면 누군가가 우릴 여기로 유인해냈다는 뜻인가?

그리고 B팀 리더인 엔리코가 S.T.A.R.S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는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습니다.
아, 안그래도 의심 가는 녀석 한 명 있는데......

......확신범입니다.
이젠 빼도박도 못하겠군요.

그래, 내가 바로 키라, 아니 배신자다.

크, 크허어억!?
뼈, 뼛속까지 아프다......


네, 이 때까지만 해도 웨스커는 '쿨한 리더인 척 하다가 사실은 배신자이고, 자기 욕심만을 내세우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3류 악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후속편인 바이오해저드 2에서 나중에 자신의 동기이자 친구로 설정이 바뀌게 되는 윌리엄 버킨한테 '멍청한 배신'이었다고 욕먹게 되죠.

하지만 이 미약했던 떡밥은 4년 뒤, 더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낚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웨스커는 살아있었던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캡콤에서 부활시켜준거죠.

바퀴 달린 신발 없이도 힐리스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빛도 매우 강렬하게 변했고요,
(랄까 전작에선 안경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음하하하하하하하하~"라면서
재수 없게 웃는 기술도 획득하셨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붕권도 배우십니다.


근데 이상하군요.

위의 사진에서도 보셨겠지만 분명 웨스커는 타이런트의 복대까지 뚫어버리는 공격을 맞고 죽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저렇게 말짱하게(아닌가?) 살아있는 걸까요? 아무리 캡콤이 웨스커를 죽여버리기엔 아깝다싶어서 부활시켰다지만 좀 억지가 지나친 거 아닐까요?

그러나 1편을 해보신 분이라면 이런 반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질 발렌타인으로 게임을 진행하면 배리가 웨스커를 기절시키고 타이런트와 싸우게 되는데,
그 사이에 깨어나서 도망쳤잖아? 그럼 살아있는게 가능하지 않은가?

아뇨, 그럴 경우 웨스커는 더 어이없게 죽게 됩니다.
타이런트도 아니고 듣보잡 졸개 괴물인 키메라 한테 죽은 채 발견되지요.

네, 그런고로 1편에서 웨스커는 죽은 게 맞습니다. 1편에서 캡콤이 너무 깔끔하게 죽여버린지라, 도저히 그럴싸하게 덮어버릴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캡콤은 다음과 같은 '갖다 붙이기'를 구사합니다.

그다지 시간이 없어. 예전의 그것의 사용법을 가르쳐주지. 동기로부터의 선물이다, 사양하지 말게. 넘겨준 샘플은 변이체의 일종이야. 재밌는 성질을 갖고 있지. 주입은 최소한 5분 이전에 끝내도록 해. 침투는 빠르지만 그래도 몇분 정도는 걸려.
죽게 되어도 단편조직만 남아 있으면 바이러스가 신체조직을 재구성해서 소생해. 그리고 재구성 중에는 일시적으로 가사상태에 빠지지. 동물실험에는 70%정도가 '강화상태'가 되었어. 근력과 심폐능력이 생존전보다도 강력해졌지. 바이러스가 사망원인을 극복할 수 있도록 작용한 걸거야. 남은 20%는 생체강화가 드러나지 않는 소생, 10%는 소생하질 못했어. 소생확률은 대략 90%. 사람한테 시험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쁜 도박은 아니겠지. 뭐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너라면 잘 할 거야.....행운을 빈다.

음, 그러니까 말이죠.
간단하게 말하자면 웨스커의 동기인 윌리엄 버킨이 준 변이체 바이러스를 스스로 몸에 주입해서 일부러 죽은 다음 부활했다는 겁니다. 오오, 듣고보니 그럴싸 한......가요?

아, 참고로 엄브렐러를 배신한 웨스커와는 달리 '더욱 더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해' 남기로 한 변이체 바이러스의 발견자, 윌리엄 버킨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니 잠깐만,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들기 위해 남는다며? 게다가 완성했다고 했잖아? 근데 어째서 부활한 웨스커보다 나아진 점은 별로 없는 거지?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더 흉측한 괴물이 되어버렸잖아! 웨스커는 자기 본래 모습은 유지한 채 엄청난 괴력을 손에 넣었는데 너는 더 강력한 바이러스 갖고도 그 정도 밖에 못되냐?

.......뭐 어쩌겠습니까, 원래 설정은 엿장수하고 바꿔먹은 캡콤이 잘못이지.

하지만 이 뱀눈알 낚시꾼의 떡밥 던지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이오해저드 시리즈가 계속되면 계속될 수록 이 아저씨의 낚시질은 더더욱 심해지지요.

일단 바이오해저드 코드:베로니카.
분명 이벤트신에서 슬라이딩이니 붕권이니 별의 별 신기한 기술들을 다 보여주놓고서는
정작 플레이할 수 있게 될 때는 고작 나이프 한자루 쥐고있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니 총 한자루도 안 쥐고 있으면 엄청난 신체 능력 같은 게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이건 뭐 두부도 아니고......

코드:베로니카 완전판에서 웨스커는
클레어의 탈옥친구인 디카프리오, 아니 스티브 번사이드가
자신처럼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니, 잠깐만 걔는 너랑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요.
랄까 코베 완전판이 나온지 8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웨스커한테 한번 더 낚인 걸까요?

바이오해저드 제로에서는 웨스커의 옛(이라 말하고 새로 추가된이란 뜻) 낚시가 밝혀집니다.
자신의 옛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마커스 박사를 낚아서 그의 연구결과를 훔쳐갔다는군요.
마커스 박사 본인도 좀 나쁜 놈이었기 때문에 낚인 거에 대해 동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웨스커랑 버킨의 재수없는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약간 불쌍해지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이오해저드 우산회사 연대기.
레온이 4편에서 얘기했던 '주식 때문에 망했다'란 얘기는 엿먹으라는 건지,
웨스커가 우산회사 멸망의 모든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말은 즉 레온도 녀석한테 낚였다는 걸까요?

결론입니다.
웨스커는 원래, 멋만부리다가 죽는 미미한 떡밥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캡콤이 추가 설정을 하나씩 하나씩 어거지를 발휘하며 덧붙인 결과 지금은 상당한 팬층을 가지고 있는 낚시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캡콤의 다음 떡밥인 바이오해저드 5에 나와 자신의 숙적인 크리스를 낚으려 나타나겠죠. 그의 피싱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날 때마다 바이오해저드 팬들은 한번 더 낚일 수 밖에 없지요. 파닥파닥~


아악~ 이번 포스팅은 자료 모으느라 좀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12년 가까이 되는 자료들이다보니....). 8위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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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뇌광청춘 2008/05/02 16:18 # 답글

    크리스 <- 얀데레 - 웨스커
  • 발칸 2008/05/02 17:27 # 답글

    이건 뭐 낚시왕 웨스커도 아니고.
    바하 1에서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배신듣보잡이었는데 여기까지 왔군요.

    ..정리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 블랙 2008/05/02 18:17 # 답글

    질 루트에서 웨스커가 키메라에게 죽는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대부분 빨리 탈출하는라 그쪽으로 가보지 않을테니....
  • 블랙 2008/05/02 18:21 # 답글

    http://blheart.egloos.com/3726690

    최악의 수출 네이밍에 왜 이걸 넣지 않으셨는지...
  • AyakO 2008/05/03 14:56 # 답글

    음... PS 판 질로 했을 때 T모씨가 웨스커 복대 뚫는 걸 봤던 것 같은데...
    베리가 기절시키는 건 못 본 것 같고.
    루트에 따라 다른 걸까요
  • 사카키코지로 2008/05/03 23:26 # 답글

    뇌광청춘 : 커플링 자제요. ㅠ.ㅠ

    발칸 : 사실 대단해보이지 않아보이지만 낚시질 좀 많이 한 녀석임. >.<

    블랙: 배리가 자폭장치 있는 쪽으로 달려가길래 뭐하나 가봤더니 정작 찾으러 간 배리는 없고 웨스커가 죽어있었습니다. ㅡㅡ;;

    그리고 아무리 저라고 해도 모르는 거까지 TOP 10에 올릴 능력은 없어요. >.<

    AyakO : 배리가 죽는 루트로 가면 웨스커도 크리스 루트처럼 복대가 뚫립니다. 대신 배리가 죽어버리면 해피엔딩은 아득한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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