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 펜서 에프 - 정통파 JRPG의 진수!......일려나 비디오게임 이야기

대략 25년전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가 대성공을 이룬 이래,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는 '용자가 사랑과 우정으로 뭉친 파티를 이끌고 세상을 구하는 전개'의 RPG, 이른바 JRPG가 대세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수의 JRPG들이 이회사 저회사에 수두룩히 쏟아져 나오게 되었지요. 그야말로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게임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최근 들어서는 JRPG의 기세가 많이 시들어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판 망작만 계속 뽑아내는 스퀘어 탓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제 슬슬 같은 레파토리 반복에 질릴 때가 되긴 했죠(사실 슈팅이나, 대전격투처럼 한때 대세였던 다른 장르에 비하면 JRPG는 정말 오래 버틴겁니다). 엘더 스크롤이나 데몬즈 소울 같은, 서양 취미에 맞춘 RPG들이 최근 들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아가레스트 전기',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로 주목받기 시작한 컴파일 하트에서 "아직 JRPG는 죽지 않았다!"면서 '갈라파고스 RPG'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됩니다. 게임업계아니, 그 게임업계 말고요에서 갈라파고스란 세계의 대세하고는 따로 노는 일본만의 게임 취향을 비꼬는 의도로 사용되는 말인데, 그걸 아예 하나의 테마로 내걸게 되었다니 컴파일 하트의 패기에는 놀랐는데요. 그 갈라파고스 RPG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제작된게 바로 오늘 소개하는 게임인 페어리 펜서 에프(줄여서 FFF)입니다. 그렇다면 FFF는 과연 그 프로젝트 이름에 어울릴 정도로 거북(...스페인어로 거북이라는 뜻입니다)할까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알아둬야 할 부분이 있는데요. FFF는 여러가지면에서 컴파일 하트의 당시 최신작이자 최대인기작인 '신차원게임 넵튠 V'의 영향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픽이나 시스템면에서도 많이 닮아 있으며, 심지어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도 동일한 츠나코님이죠. 아니, 이 정도면 영향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베이스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FFF를 얘기함에 있어서는 넵튠V하고의 비교가 불가피하지요. 넵튠V가 해당 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든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취향 갈리는 게임이다보니 안 해본 분도 꽤 있을 거 같습니다만, 그 점에 있어선 양해부탁드립니다.

우선은 시스템면에 대해서 얘기하죠.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넵튠mk2, V와 마찬가지로 필드내를 이동하다가 적과 부딪히면 전투에 돌입하고 이동 및 공격등이 어느정도 자유로운 전투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심지어는 페어라이즈라고, 여신화를 연상케하는 변신시스템도 있습니다). 단, 넵튠 시리즈에서는 이미 갖춰져 있거나 레벨업을 통해서 획득하게 되는 스킬들이 있었던 반면에 FFF에서는 WP라는 스킬 포인트 시스템이 있어서, 레벨과는 상관없이 이 포인트를 모아 각 캐릭터의 스탯 상승이나 스킬 해방에 투자하게 됩니다(물론 레벨업만으로도 어느정도 스탯 상승이 이뤄집니다, WP로는 올릴 수 없는 스탯도 존재하고요). 그 덕분에 '스테이터스를 향상시켜 기본기가 탄탄한 캐릭터'를 키우느냐, 아니면 '각종 기술 및 필살기등을 익혀서 화려하게 싸우는 캐릭터'를 키우는 등 육성의 전략성이 생기지요.

그리고 넵튠시리즈를 베이스로 한 만큼 기본적으로 넵튠 시리즈의 장점이 대부분 FFF에서도 이어집니다. 액션게임이 아닌데도 묘하게 액션게임 하듯이 공격버튼을 다다닥하고 누르는 재미가 있고, 필드상에서 선제공격을 하기 위해 타이밍 맞춘 심볼 어택을 시도하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필살기, 마법등의 연출도 다소 전형적인 JRPG스럽긴하지만 보는 맛이 있고, 미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몬헌 파쿠리 퀘스트 의뢰도 넵튠 특유의 패러디는 사라졌지만 달성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컴파일 하트의 RPG를 해본 분이라면 FFF의 시스템 보다는 캐릭터에 더 관심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이 게임의 베이스인 넵튠이 철저하게 여성캐릭터만을 고집하며 대놓고 백합노선을 갔었던 반면에(아예 시스템 중에 릴리 랭크라는 우호도 개념이 있었죠), FFF는 다행이도 전형적인 JRPG노선을 추구한 덕분인지 남자 주인공을 비롯하여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주지요. 뭐, 오덕유저 입장에선 '난 남캐 따위 필요없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RPG에서의 파티란 그 구성이 성별이 되었든 종족이 되었든(...)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더 흥미로워지는 법입니다. 넵튠의 캐릭터들이 몰개성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FFF쪽이 더 이상적인 파티라 생각됩니다. 아,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주인공이 남자고, 다수의 히로인이 있기에 일종의 연애노선이 존재합니다역시 이런 게임은 공략하는 맛이 있어야지.

스토리도 넵튠 시리즈처럼 밝고 깨는 개그들이 넘칩니다......만, 엔간해선 악당도 불살하는 넵튠과는 달리 FFF에서는 아군, 적군을 비롯하여 몇몇 캐릭터들이 죽어나가며,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다소 잔인한 연출이 존재합니다. 확실히, 말로만 '정통 JRPG'를 추구한건 아니라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천하태평할 거 같던 주인공들도 중후반에 들어서는 꽤 진지하게 고뇌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뭐, 그런 고뇌 끝에 그들이 내린 결론이 뭔지는 이런 부류 게임에 익숙한 분이라면 이미 감이 잡히겠습니다만......

그런데 이 게임이 넵튠시리즈를 베이스로 하다보니 해당 게임의 장점을 흡수하는 것과 동시에 단점마저 흡수해버렸다는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칠듯한 노가다성으로써, 비록 넵튠V에서 악명높았던 견문자 시스템은 없습니다만, 그대신 캐릭터의 능력을 올리기 위한 WP 모으기, 퀘스트 달성을 위한 아이템 찾기가 견문자 시스템을 대신하여 노가다를 강요하게 만듭니다. 그나마 WP 노가다는 중반부 WP확보양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생겨서 그 후로는 약간 편해지긴 합니다만, 퀘스트 달성을 하기 위한 특정 아이템 획득.....은 1) 숨겨진 아이템을 찾을 수 있는 스킬을 획득해야 되고, 2) 어디서 그 아이템을 찾을 수 있는지 아무런 도움 없이 알아야 되며, 3) 한 필드에서 한번, 랜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1~2)를 다 갖췄다해도 3)에서 실패하면 해당필드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필드를 또 뒤진 뒤, 찾는 아이템이 나오길 빌어야 되죠. 넵튠도 그랬지만 공략본 없이 이 게임을 파고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아니면 노가다왕이 되거나.

그 대신인지 멀티 엔딩을 갖고 있는 게임인데도 넵튠mk2나 V하고는 달리 메인 히로인 두명과, 노멀엔딩의 세가지 엔딩만이 존재합니다. 가만 다른 캐릭터 엔딩은? DLC를 기대합시다. 그리고 기왕 나온 김에 하는 스토리 얘기 되겠습니다만(누설주의?) 아군은 다양해지면서 상당히 흥미로워진 반면에 악역은 너무 전형적이어서, 후반에 의외의 반전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넵튠V의 7현인에 비하면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네요. 홍일점이 괜찮았는데? 그러니까 DLC를 기대......

그리고 원래 컴파일 하트 게임이 이런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같은 데이터를 재탕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 역시 넵튠 시리즈와 동일합니다. 뭐, 적의 그래픽을 그대로 가져와서 색상만 바꾸고 다른 적이라 우기는 건 다른 RPG에서도 충분히 있는 부분입니다만, 필드까지 우려먹는다면 그건 문제죠. 게다가 아무런 설명없이 같은 필드를 재탕하던 넵튠과는 달리, FFF에서는 아예 그럴 수 있는 명분까지 생기게 됩니다(뭐, 눈치 빠른 분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겠지만, 직접 확인해보세요). 덕분에 중반부에 들어서는 새 필드인데도 길을 외우게 되버리니.....심지어는 극히 일부지만 넵튠의 데이터를 FFF에서도 재탕할 정도네요. 가만 그렇다는 건 넵튠 추가 DLC도 가능하다는 거!?

결론을 내리자면 FFF는 전형적인 JRPG를 추구한 게임답게, JRPG 특유의 재미를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뭐, 예전에 넵튠mk2를 리뷰하면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만, 어설프게 만든 대작게임보다는 잘 만든 B급게임이라 할 수 있지요. 가뜩이나 JRPG시장이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런 게임이 나오다니 얼핏보면 이해하기 힘듭니다만, 사실 컴파일 하트는 아가레스트 전기나 넵튠 시리즈로 이런 게임들을 계속 내고 있었던 걸요. 그런 전작들에 비하면 FFF가 약간 대중성을 갖추긴 했습니다만, 결국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 역시 그 게임들을 즐기던 사람들이 될 거 같습니다. 애초에 '갈라파고스 RPG'라는 프로젝트가 그런 사람들을 노리고 시작한거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이 게임이 컴파일 하트의 게임인만큼, 사이버 프론트 코리아에 의한 정식발매가 되지 않을까......하는 추측이 떠돌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글쎄요? 물론 CFK가 별의 별 게임들을 정발해온 경력이 있어서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초차원게임 넵튠이 애니도 나오고 소설도 번역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일회성 게임이나 마찬가지인 FFF보다는 지속적으로 투자가 될 수 있는 그쪽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거 같네요.

덧글

  • 소울오브로드 2013/11/14 00:48 #

    믿습니다 ckf ... 이전에 요즘 일본 게임사들이 스팀을 통한 유통을 찌르기 시작하고 (캡콤이야 진작부터 활동영역이 세계구였으니 논외) 컴파일 하트도 다름아닌 아가레스트 전기를 스팀에 등록시켜서 이것도 스팀에 등록되지 않을까 기대중.
  • 사카키코지로 2013/11/15 04:22 #

    풍문에 의하면 CFK의 재정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데(사실 그쪽에서 발매한 게임들을 보면 어느정도 납득이 갑니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모처럼 안정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넵튠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나을 거 같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게다가 요즘 넵튠 신작 나오는 속도가 좀 빠른 편이라, 이 게임 저 게임 다 한글화하기엔 좀 버거울 거 같네요.

    스팀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니 패스......하겠습니다만, 아가레스트 전기도 이제 5년된 게임이에요. 신작들이 후다닥 스팀에 올라올 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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