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게임의 웰던 이식작을 샀더니 쿠소급 리메이크가 공짜로! by 사카키코지로

이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친 소녀 YU-NO는 이브 버스트 에러 등으로 유명해진 故 칸노 히로유키씨가 엘프로 이적하고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게임입니다. 달랑 게임하나 만들고 회사를 떠났다니 고인과 엘프사이에 트러블이 있었다는 건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엘프는 이번 세기 초에 자신들의 인기작품들을 수차례 리메이크 했었지만 이 게임만은 건드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칸노씨도 엘프도 없습니다. 이렇게 원작사나 크리에이터가 사라질 경우 해당 게임의 리메이크나 후속은 포기해야 됩니다만, 다행이(?) 5pb.가 엘프로부터 판권을 구해서 리메이크작을 낸다고 발표했었죠. 그리고 그로부터 3년 뒤. 두차례의 발매연기와 리메이크 퀄리티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 속에 마침내 발매된 문제의 게임은 이브 버스트 에러나 탐정신사 시리즈가 그랬듯이 고인능욕이 될까요? 아니면 드디어 원작의 명성에 걸맞는 리메이크 작이 드디어 나타난 걸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달 정도로 실망하긴 했습니다만, "일단은" 고인능욕까지는 아닙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지요.

우선 이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그래픽입니다. PC-98판 원작이든 새턴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깔끔한 그래픽과 선명한 폰트는 확실히 세월이 지났다는 실감이 남과 동시에 왜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의 리메이크를 바랬는지 이해가 될 정도지요. 게임시작시에 나오는 데라 그랜트의 모습을 보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나기 료씨의 그림체도 좋지요. 아르 토네리코나 풍수학원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하겠......지만 그걸 본 사람이 요즘은 없으려나?

게다가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원작의 스토리가 잘만들어졌다보니 지금 플레이해도 다시 빨려들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10여년전 공략집을 옆에 낀 채 그렇게 플레이 했기에 스토리는 대충 다 기억하고 있는데, 중요한 씬이 되면 스킵을 멈추고 찬찬히 글씨를 읽게 되네요. 스킵없이 전부 클리어하려면 꽤 걸릴텐데, 아래 서술할 단점들을 감안하면서도 그래도 할거 같습니다.

자, 이걸로 이 게임의 장점 끝(...). 이제부터 문제점들을 언급하겠습니다.

먼저 게임 나오기 전부터 여러번 문제가 제기 되었던 그림체에 대해서 얘기하죠. 앞서 얘기했듯이 전 나기 료씨의 그림체를 좋아하고 이번 유노 리메이크 작에서는 현세대 게임기의 스펙빨에 힘입어 그 그림체가 굉장히 깔끔하게 나옵니다. 문제는 그게 원작하고 너무 딴판이에요. 리메이크면 어디까지나 원작을 토대로 다시 만드는 거일텐데, 여기서는 그냥 완전히 새로 그렸습니다. 이게 그 사람 맞나 싶어질 정도지요. 마찬가지로 원작과 너무 다르게 캐릭터를 그려낸지라 욕을 먹었던(엄밀히 말하자면 욕먹을 짓은 다른 것도 많았지만) 악마성 드라큘라 저지먼트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이건 나기 료씨의 잘못이 아니라 이렇게 디자인을 바꾸도록 요청한 제작진들의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5pb.는 카마이타치의 밤을 리메이크하면서 원작의 실루엣 그래픽을 라노벨풍 그림체로 갈아치운 전적이 있죠.

그리고 이는 성우들의 연기력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아니 뭐, 실제로 게임을 하기 전부터 새턴의 쟁쟁한 성우진들을 능가하기는 커녕 맞먹지도 못할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이건 정말 너무하네요. 아니 뭐 국어책 읽기 같은 엉터리 연기력은 없습니다만, 목소리나 연기 톤이 대사하고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타쿠야의 경우 새턴판에서는 히야마씨가 어떤때는 오버를 하고, 어떤 때는 용자왕 같지 않은 진지한 투로 대사를 읽어주셨었는데요, 리메이크판의 하야시 유우씨는......참 중립적이네요. 그냥 "연기한다"는 목소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지만 개인적으로 좀 화가 날 정도로 짜증났던 건 단연 이 게임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타케다 에리코. 아니 히사카와 아야씨의 쿨 뷰티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지고 왠 변태 아줌마 목소리가 되어버렸어!? 새 성우 도대체 누구야?

코바야시 유우 화백님


......아무튼, 결론은 좋은 그래픽과 어느 정도 검증된 성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렉팅이 잘못 되어서 상당히 실망스럽다는 겁니다. 게다가 문제점은 아직도 안 끝났어요.

처음 유노가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 스토리 역시 현 시대에 맞춰서 새로 뜯어 고칠거라 생각했습니다. 워낙 오래된 게임인 것도 있고, 그 때랑 지금이랑 시대적인 가치관이라던가 다른 게 많으니 스토리 변경이 불가피할거라 여겼던 거지요. 그리고 다행이도 그런 변경은 없었습니다. 대신 18세 이상 추천이었던 새턴판보다도 심한 가위질이 벌어졌지요. 뭐, "야겜이니까"라는 자기합리화로 설명이 되었던 과다한 속옷노출이 줄어든건 그럴만하다 쳐도, 일부 에로씬의 삭제(안 지운 씬이 있다는 것도 은근히 짜증나네요), 캐릭터의 노출도 높은 복장 수정(특히 아사쿠사 카오리는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키 위해 노출도 높은 복장을 입는 다는 설정이었는데 그게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심지어 노출이나 폭력하고는 상관없는 장면조차 없애버렸다는 건 이해가 안됩니다. 이 게임의 발매연기 사유 중 하나가 CERO 때문이었다는 걸 듣긴 했습니다만, 카마이타치의 밤도 CERO-Z등급으로 냈던 5pb.가 D등급으로 내려고 이 게임을 가위질 한거 같진 않네요.

그 외에도 문제점은 더 있습니다, 이걸 보세요. 게임은 나름 플레이어를 도와준답시고 어딜 클릭해야 되는지 이렇게 포인트를 표시해뒀는데, 그게 오히려 모처럼의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너저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왜 저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스크린샷 기능을 냅두고 휴대폰 카메라로 화면을 찍어야 되는 거죠? 네, 스포일러 방지한답시고 게임 본편의 스크린샷 캡처를 전부 막아버렸어요! 20년 전 게임을! 크아아아아아악!!!

그런데 이렇게 문제점 많고 실망스러운 게임을 전부 덮어씌워줄만한 구세주격 요소가 하나있습니다. 바로 초회특전으로 주어지는 PC-98판의 (거의) 완벽 이식판이죠.

시작화면부터 도스V 키던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망한 회사 로고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네요


PC-98원작의 도트 그래픽 그대로 플레이하게 되는 이 이식작은 그야말로 '우리가 원하던 유노는 바로 이거였다'라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픽은 도트지만 폰트는 고해상도를 유지한다던가, 옵션에서 앤티 얼라이징을 지원해준다던가, 그 가증스러운 포인터를 없앨 수 있다던가.....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나 가위질이 되어있다는 것과(그래도 리메이크판과는 달리 새턴판 수준의 수위를 유지합니다), 새턴판의 음성이 없다는 정도? 그야말로 잘 만든 이식작을 샀더니 엉터리 리메이크판이 딸려 들어왔다는 기분입니다.

슬슬 마무리 짓지요. 이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친 소녀의 리메이크판은, 저 같은 칸노 히로유키씨의 팬이나 살법한 퀄리티의 게임입니다. 이브 버스트 에러나 이 게임이나 워낙 유명한 게임이었던 만큼 관심 가질만한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이걸 해보고 원작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치는 마세요. 차라리 새턴을 해보는게.....는 오히려 이 게임 때문에 새턴판의 가치가 올랐을려나? 여튼, 유노를 제대로 알고 싶은 분이 있다면 리메이크판이 아닌 이식판을 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덧글

  • 듀얼콜렉터 2017/04/25 02:04 #

    새턴판 가지고 있는데 플레이는 하지 않았었네요, 그때 일본어고 뭐고 잘 몰랐던 시절이라 하아. 지금에 와선 엔딩이고 다 스포일러 당하고 있는지라 이제와서 잡기도 애매하고 저한테는 그냥 미완의 명작으로 남을듯 싶습니다 크흑...
  • 사카키코지로 2017/04/26 22:43 #

    이, 이식작을 해보시기를....
  • 순수한 빙하 2019/01/06 13:44 #

    초회한정으로 새턴판 고해상도 리마스터는 제공안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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